회사를 옮기고 나서 오리엔테이션을 갔었다.
그때 나는 삼성에서 악명높은 SVP를 이미 해본 이후라 그런지 오리엔테이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사실 첫번째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지만 그때는 놀러 가느라... 참여하지 않았고,
두번째까지 빠질수는 없어 그건 참여했었다.
(사실 오리엔테이션 끝나자 마자 태국 여행가기로 했었기 때문에 맘속에는 이거 빨리 끝내고 가야한다뿐이였음.)
두번째 오리엔테이션이라 그런지 나 외에는 다들 아는 사이였고, 그전에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이미 꽤나 친한 사람들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냥 무관심한듯한 얼굴로 구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 나한테 와서 저 형이랑 같은 방써요 하면서 말을 처음 걸었던게 주환이였다.
포스코도 삼성의 SVP처럼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사실 SVP에 대면 그냥 적당히 놀다가 가는 수준이였다.
(그만큼 SVP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데려놓고 잠안재우고 쥐어짜서 삼성 생활의 미래를 제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였다.)
거기서 대충 대충 지내고 있던 와중에 강사중 한분이 굳이 나를 일으키더니 저기 있는 한명은 신입사원이지만 사실 신입사원이 아니다 라며 나를 소개했었다.
거기서 삼성경력이 처음으로 밝혀졌던것같은데, (뭐 굳이 숨길일은 아니였으니) 그 뒤에 나랑 굉장히 안어울릴것 같고
마이애미쪽 기계공학과를 나와 잘놀것처럼 생긴 사람 한명이 접근해 왔으니 그게 경한이였다.
경한이도 사실 나랑 같은 회사에 다니다가 온거였는데 커밍아웃의 첫 멘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따 딸바 한잔해요.
딸바는 딸기바나나쥬스의 줄임말로 삼성엔지니어링 카페의 인기 메뉴이다. 삼엔에서 일하다 짱나면 야 딸바나 한잔 하자를 던지며 일어서는게 정석 레파토리.
원중이는 딱봐도 약간 간들간들하고, 뭔가 까칠할것 같은 느낌이였는데
알고보니 같은학교 같은학과 4년후배였다.
물론 4년 차이가 나면 수업중에 마주칠일이 사실상 거의 없었고, 나역시 과내에 아는 후배가 한명도 없었기에 학교 다닐때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었다.
하지만 나중에 대질 심문을 통해보니 내가 수업듣다가 아 저앞에 앉은애들 참 시끄럽고 몰려 다니네 라고 생각했던 무리중에 일원이었음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로 존재는 몰랐지만 속으로는 욕하고 있었던 뭐 그런 상태.
원중이와 주환이는 이제 회사를 떠났고, 경한이도 앞으로 어찌될지 모른다.
다같이 볼 수 있을때 어딘가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장소가 쓸쓸함과 외로움 이라면 둘째가면 서러워할 여행지인 영월이였던것은 약간 무리수였던듯 하지만
일단 날씨도 컨셉에 맞게 스산하게 잘 깔렸다.
지금와서 보니 꽤나 많은 곳을 가고 꽤나 많은것을 먹었다.
같이 있다고 항상 좋은것은 아니다.
다시 못본다고 항상 나쁜것도 아니다.
언젠가 또 볼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이게 마지막일수도 있다.
다음번에 이 멤버가 다시 모이려면 저 머나먼 벤쿠버나 샌프란시스코 정도인게 가장 현실성 있어 보일정도로
다들 흩어져 버렸지만 또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에 다시 볼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반가울수도 있고, 생각보다 덜 반가울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마지막이란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