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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시속5km - 우리가 걷는 속도

시속 5KM - 우리가 걷는 속도(6)

기왕 찜질방에서 하룻밤 잔거.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원기 충전 제대로 한번 하고 아산으로 출발했다. 너무 늦게 일어나서 아점을 먹기로 했는데 가도가도 매점이 나오지 않아서 아산가다가 아사 할뻔 했다. 그나마 만난 휴게소는 컵라면이나 빵 같은건 팔지도 않아서 어쩔수 없이 그냥 우유와 과자 조금으로 끼니를 때웠다. 약간의 휴식후 다시 출발하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 참고 조금만 더 갔으면 순천향대학교가 나와서 식당가와 각종 편의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는 것. 마침 비도 적적이 잘 와서 뜨끈한 컵라면 국물을 후루룩 먹었으면 뱃속 가득 따뜻한 기운이 퍼질 것 같았었는데.








-비가 내리던 날-

아. 비 이야기가 나오면 빠질 수 없는것. 여행 준비를 할때 우의가 꼭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우의를 사러 갔다. 어디보자. 제일싼게. 허걱. 기본 만원. 좀 괜찮다 싶은건 이만원도 넘었다. 평소에는 입지도 않을 우의인데 너무 비싸잖아. 방수포도 필요해서 봤더니 너무 비쌌다. 어떻게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냥 옆에있는 이천원짜리 일회용 비닐 우의를 샀다. 그래도 양심이 있었던지라 하나로는 부족할거 같아서 두개를 사갔다. 이날 비가 와서 그간 들고만 다니던 우의를 드디어 꺼냈는데. 역시나 타이밍 좋은 이장호가 갈궈댔다. 어디서 초등학교 우의 들고 왔냐고. 방수포도 없어서 우의 하나를 배낭에 묶어서 방수포 대용으로 썼더니 민망하니깐 같이 가지 말잖다. 사실 나도 조금 민망하긴 했다. 비가 좀 많이 와서 장비 정비를 위해 공장 건물 안에 잠깐 들어 갔었는데 거기 아저씨가 보더니 말했다. 우리 비닐은 많아.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 계속 괜찮다고 했는데 끝까지 말하셨다. 줄게 비닐밖에 없는데 그건 얼마든지 가져가. 나중에 이장호가 그랬다. 이게 다 니때문이라고. 나를 탓하지 말고 돈을 탓해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으니.


-이게 바로 이장호의 갈굼을 발동시킨 방수포 대용 우의-

공장에서 우리랑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데 일하면서 돈벌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흠. 우리가 마냥 노는건 아니지만 어쨌건 누구는 힘들게 일해 돈버는데 우리는 속편히 여행 다니고 있으니 좀 그랬다.
어쨌거나 갈 길은 계속 가야 하는 법. 비도 살짝내려주니 그리 덥지도 않고 기분도 좋고 진도도 죽죽죽 나갔다. 이제 30KM정도는 별 문제 없이 사뿐히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아산 가던 길에-

아산까지 별 무리 없이 가뿐히 도착하고 자장면으로 저녁을 해결한 후 잘 곳을 구하기 시작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마을회관은 당연 없었고 갈곳은 교회 밖에 없었다. 2~3군데 교회를 둘러 보았으나 모두 퇴짜. 실패를 거듭하니 마음은 당연 약해졌고 당연히 옆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던 찜질방으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교회를 찾아 가는길에 사실 이번 교회에서도 퇴짜 맞았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음을 고백한다. 거절 당하고 나올때 세명 모두 실망보다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으로 어쩔수 없이 머 찜질방 가야 겠는걸? 멘트를 날릴때의 그 의미 심장함이란.
이런 와중에 갑자기 한규가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시내가 아니라 여관도 없고 찜질방도 없는 시골에서 이런 일을 겪었으면 죽기살기로 교회 찾아 다녔을텐데 여기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교회를 찾아 가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상당히 감동적인 골자의 연설이었다. 결의로 가득찬 눈빛의 한규를 보고 일동 잠시 침묵. 그 마음이 통했는지 4군데 거절 끝에 드디어 잘 곳을 구했다. 우리도 이제 여행의 프로페셔널급이 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