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긴 보령이 끝나고 드디어 홍성에 도달했다. 군산에서 보령까지는 중간에 찾아갈 생가가 하나도 없어서 사실 좀 지루한
면이 있긴 했지만 지금부터는 생가 찾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덜 힘들 것 같았다. (물론 우리의 착각이였다.) 아침에 휴게소에서 상한빵을 먹고(환불
받았고, 어찌되었건 배는 채웠으니 우리로서는 손해 볼거 없다고 좋아했다. 덤으로 이장호는 불가리스로 해결하지 못한 속을 상한빵을 이용 쾌변으로
승화 시켰다.)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로 출발했다. -홍성으로 가는 길- -길고긴 보령 끝. 홍성 시작- -홍성에서- 한용운 선생 생가지로 가는 길은 좋았다. 해가 좀 있기는 했지만 푸른 하늘에 흰구름. 차가 별로 없는 시골길. 길 양옆으로 있는 나무 그늘.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가다보니 생가에 도착했다. 생가 옆에는 기념관과 참배를 드릴수 있는 사당이 같이 있었다. -한용운 선생 생가지 가는 길에서- ‘님의 침묵’ - 만날 때 이별할 것을 알 듯이 헤어질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수능공부 할때 문제집에서 줄줄 외우던게 생각났다. 이 구절에서 님은 일제에 빼앗긴 우리 조국 어쩌구 저쩌구.. 여기에 대응하는 사자성어로는 어쩌구저쩌구... 문제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시로만 대하는 님의 침묵은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생가지에서- 구경을 끝내고 이제 김좌진 장군 생가지를 찾아 출발. 그사이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 있었고, 생가지 들어오느라고 옆으로 빠져걸었던 그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가려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셋다 말없이 걸었다. 가끔 이장호가 동수랑 대화를 시도 한 것 외에는 차 한대도 없이 사방이 고요했고, 내려다보는 해만이 있었다. 이 김좌진 생가 가는 길이 여행 통틀어 2번째로 힘들었던 길로 기억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일도 있었다. 생가지까지 앞으로 2KM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 마음속으로 ‘아 20분 정도만 걸으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분명히 20분이 충분히 지나도록 걸었는데도 생가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나는 장호에게 한참 걸었는데 왜 안나오냐고, 시간이 몇분 지났냐고 물어보았다. 장호가 말했다. 정확히 9분 43초 걸었다고. -김좌진 장군 생가 가는 길. 정말 힘들다- 그렇게 힘들여 도착하니 생가지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었다. 안돼. 구경이고 머고 좀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이끌고 안을 둘러보았다. 참배도 드리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힘이 미치지 못해 전시관을 본 것으로 만족했다. -김좌진 장군 생가에서- 잠은 교회에서 해결. 여행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에는 교회가 정말 많았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기본으로 2개는 있었다. 경상도에는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건 도보여행 하는 지금 입장에서야 좋으니. 그리고 내 임무도 하나 생겼다. 어렸을 적 교회를 다닌 경험이 있고, 외삼촌이 목사셔서 그나마 기독교에 대해 좀 알기 때문에 들어가기전에 이 교회가 정통파 인지 사이비인지 구별하는 것. 아니었으면 여호와의 증인이나 예수의 재림 같은 교회에 들어갔다가 극진한 환대와 융숭한 대접을 받고, 그대로 도보여행이 종료되는 위험에 처했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