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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봄의 멜로디

봄의 멜로디 - 4월 11일

여행은 언제나 달콤 쌉쌀한 맛.


- 터키 반 호수

처음 반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7시. 산리 우르파 아니 시리아의 더위에 익숙해졌던 나에게 이곳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벌벌 떨면서 호텔을 찾아 갔으나 모두 full이고 영어는 통하지를 않아 방하나 잡는데도 애를 먹고,
겨우 들어간 숙소는 솔직히 그냥 그랬다.
주린배를 채우려 돌아다녔으나 가게는 대부분 닫혀 있고 밥이 먹고 싶었으나 케밥집밖에 없어
에라하고 아무곳에나 들어갔다. 그곳에는 soup를 팔고 있었다.
rice메뉴는 없냐고 하니 오직 soup만 있다고 했다. 그것도 모두 고기 soup만.
누린내를 없애기위해 이상한 향신료와 레몬 범벅이 되어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괴레메에서의 수프가 생각났지만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알았다 하고 앉았다.
나의 앞에 나온 soup는 음.. 이거 진짜로 한국의 고기국과 맛이 비슷했다.
좀 더 고기의 찐한맛이 나는 정도?


- 터키의 soup. 우리나라의 soup를 생각하면 안된다.

주린배를 뜨끈하게 채우고 오렌지와 해바라기씨도 사서 숙소로 돌아와 기분좋게 누웠으나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푹쉬고, 구경은 내일이나 하려 했는데 이상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분명히 몸은 피곤했고, 머리도 그걸 알고 있었으며 하품도 나오곤 했지만
침대에 누우면 잠이오지 않았다. 그대로 삼십분을 누워있다가 도저히 안되서 밖으로 나갔다.
가까운 곳중에 반성이 갈만한것 같아 무작정 버스를 타고 갔다.
솔직히 성은 많이 봤다. 크락데 슈발리에도, 알레포성도 본 마당에 유명하지도 않은 이 성에
뭐가 있을까. - 그냥 무너져가는 성벽이나 있겠지 - 이게 내 심정이었으나 도착한 반 성은
눈부신 설산과 드넓은 호수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 반성과 설산.


- 반 호수. 설산. 그리고 평원.




- 분지 형태의 반 도시의 외곽에 있는 높은 언덕에 거대한 규모로 자리잡고 있는 반성.

네팔 포카라에서 받은 것과 비슷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그 기분.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반에 있는 시간이 오늘 내일 뿐이란걸 깨달았다.
이대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조금이라도 더 반을 여행하고 싶다.
바로 숙소로 돌아와 먹을거리를 챙겨 호샵성으로 떠났다.
쿠르드 족의 성이였던 이곳은 반에서 약 60km정도 떨어져 있다고 했다.
시간과 비용 모두 빠듯했으나 까짓거 밥을 싼거 먹저머 라는 마음으로 바로 달려갔다.
그곳은 반성과는 완전히 다른곳이였다.
바위산에 자리잡은 호샵성은 악마의성 같은 느낌이였다.
황량한 바위산들과 비죽비죽 솟은 성채, 주위를 맴도는 까마귀떼까지.
날은 흐린데다가 여행객은 정말 나 하나였었다.
성은 멋지긴 했지만 거센 바람과 함께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크락데 슈발리에가 기사단 성의 느낌이라면 이곳은 각종 몬스터가 우글대는 암흑성의 느낌이였다.)
결국 떨어지는 빗방울에 밀려 내려 올 수 밖에 없었다.


- 호샵성. 어릴때 레고시리즈중에 있던 악마의 성이 생각난다.




- 호샵성과 그 일대. 정말 황량함의 그 자체.




- 중앙부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지지대가 없어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가운데로 폭삭하고 넘어질것같은 압박감을 준다.





다시 반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왜이리 오지 않은 건지. 몸은 비에 젖어 점점 추워져가고
괜히 왔나라는 생각이 들때쯤 구세주처럼 트럭한대가 나를 태워주었다.
어디에 묶냐길래 호텔 이름을 댔더니 그 근처에 세워주었다.
그 트럭에는 나 말고도 세명이 더 탔는데 그중 한명이 같이 내리더니 호텔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내 직감상 굳이 호텔까지 데려다 줄 필요는 없는데
(내가 처음 호텔 가는 것도 아니고) 이런 과잉 친절의 경우 대개 뭔가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친구 성큼성큼 가다가 갑자기 저녁먹지 않겠냔다.
아하 - 이녀석 레스토랑 삐끼(?) 구나. 나는 돈이 한푼도 없다고 하며 빈 주머니를 보여주었다.
(가방엔 사실 있었지만) 걱정말라고 자기가 산다며 거침없이 고급레스토랑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어 하며 얼결에 따라 들어가 메뉴를 보니 10~12리라 정도.
내 예산에는 도저히 맞지 않았으나 들어온거 나갈수도 없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친구가 산다니 에라 모르겠다하고 시켰다.
음식은 굉장히 맛있었다. 터키에서 먹은 것 중 제일로.
(다만 음식에 뭘 타지 않을까 경계하는게 힘들었다. 일부러 화장실도 안갔다.)
거기에 물과 콜라까지 시켜주고 차까지 한잔 권하는걸 배부르다고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보통 뭔가 탈때는 차에 넣기 마련)
영어를 잘 못해 사진과 단어 몇개로 겨우 몇마디 의사소통을 하고,
밥은 어찌나 빨리 먹는지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워버리고,
(밥 다먹고 화장실 가는척하며 가버릴까봐 나까지 후루룩 먹어야 했다.)
계산을 정말 자기가 다 하더니 또 성큼성큼 나갔다.
호텔로 가는 길에 몇 마디를 겨우 이어나가고 어두운 골목에선 방어자세를 취하며
딱 정정선을 유지하며 걸어가던 중 갑자기 자기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나쁜사람은 아닌것 같았으나
비를 맞아 춥고, 피곤했고, 또 혼자였기 때문에 거절을 했다.
그는 서운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나를 호텔로 데려다주고
인사를 하더니 또 성큼성큼 자기길로 갔다.
내가 그를 따라갔다면 어떤 좋은일이 혹은 나쁜일이 있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여행은 언제나 달콤 쌉싸름한 것.
그리고 그는 쿠르드 족이고, 대학생이며, 이름은 selami라는것.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 반성. 산책나온 가족들.

(참고로 쿠르드 족은 터키 동부, 시리아 북부, 이란 서북부에 살고 있는 인종으로
현재 터키 정부와 쿠르드족 독립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 원래는 친절하고, 유쾌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으나 잦은 총격전과 테러로 위험 인종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