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발이다.
서울에 10시까지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 10분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전날 미리
준비를 해두긴 했지만 아침에 최종적으로 짐을 싸면서 보니 뭔가 미진한게 많았다. 특히 아직 과외를 시작 못한 상태라 수중에 돈이 전무 했기
때문에(여행 경비 20만원도 그런 발로 어디 가냐고 어림도 없다는 부모님 조르고 졸라서 겨우 마련했다.) 타월이며, 우의, 배낭 등등이 뭔가 좀
싼티가 팍팍 나 보였다. (이걸로 나중에 이장호 한테 심심하면 갈굼 받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출발을 한 것을. 아직 수술한 후에
재활이 완료 되지 않았지만 내 발 하나만 믿고 가는 이번 여행. 모양새가 좀 이상한 내 발이 그 어떤 다른 장비 보다 든든해
보였다.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고, 서울에 진입한 버스는 내리는 비와 차들에 뒤엉켜 제대로 속도를 못내었다. 그바람에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하고 말았고, 여행 시작도 전에 이장호가 전화로 엄청나게 갈궈 댔다. 내려서도 5번 탑승구 못찾는다고 갈굼 받고, 만나서도
어디서 소풍가방 매고 왔냐고, 김밥 싸들고 오는 가방에 뭘 그렇게 많이 넣어 왔냐고 갈굼 받았다. 이번 여행의 시작과 중간과 끝과 대미를 모두
장식하는 이장호 갈굼의 서막과 함께 드디어 군산행 버스를 타고 출발 했다.
-출발버스에서
이장호-
-출발버스에서
이한규-
-출발버스에서
나-
세시간 반 버스를 타고 왔다가 다시 세시간반을 버스를 타고 내려갔더니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행히 군산의 날씨는
구름만 조금 있을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도착 시간은 오후 2시경. 일단 첫 번째 목적지인 3.1운동 기념관을 찾아 가야 하는데 막상 내려보니
막막했다. 이장호가 자기 나름대로 최대 확대한 정밀지도라고 가져온, 너덜거리는 A4만 믿고 가기에는 길이 너무 많았다. 결국 이리저리 조금씩
돌다가 물어물어 겨우 방향을 잡고 출발했다.
-군산에서 길 찾던
중에-
중간에 점심으로 분식집에서 떡뽁이/김밥/오뎅을 먹었는데, 이 분식집. 우리가 첫 손님인지 우리 주문을 받자 그때서야 주섬주섬
냉장고에서 떡뽁이를 꺼내 만들기 시작했다. 아. 잘못 골랐구나. 셋이서 그런 수군거림을 주고 받았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나름 맛있었다. 특히
분식집 아저씨가 처음에는 우리를 그냥 시큰둥 하게 보시다가 특제 제작한, 민족애와 자긍심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발제문을 보고는 급흥분하셔서
가는길을 마구 설명해 주셨다. 고개까지 끄덕이며 설명을 열심히 듣긴 했는데 기억나는건 다리. 유턴. 쭉. 이것 뿐이였다. 특히 유턴. 이대목이
정말 아리송했다. 가던길을 유턴 하라니. 그럼 원래 자리가 나오는데 말이 되는가? 그래도 일단 방법이 없으니 가보자라는 마음에 계속 가보니
정말로 쭉 가다가 다리근처에서 유턴해서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가는게 맞았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간 3.1운동 기념관은 너무 작았다.
좀 많이 실망할 정도로. 사실 군산은 원래 계획에 없었다가 우리도 400KM정도는 걸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넣은 거였는데 나중에 걷다 보니
군산을 넣지 않았어도 400KM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아무튼 그래도 기왕 간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드디어 찾은 기념관과
기념비. 하지만 너무 작았다.-
서해 갯벌을 배경삼아 금강 하구둑을 도보로 걸어 넘을 때는 처음 보는 경치에 마음도 확 트였다.
-금강
하구둑에서-
-서해의
갯벌-
-서천 가는
길-
하구둑을 넘어 서천에 도착.이제 처음으로 잘 곳을 알아 봐야 했다. 애초 여행 계획할 때 먹는 것은 사먹고, 자는 것은 최대한
마을회관이나 교회를 이용하고 3일에 한번정도씩만 찜질방이나 여관을 이용하자고 했었기 때문에 첫날부터 돈을 내고 잘 수는 없었다. 일단 근처
학교에 가봤으나 실패. 대신 학교에 계시던 선생님(?)으로 추정되시는 분이 딴거 줄건 없고 미안하다면서 가는 우리를 붙잡고 삶은 감자!를
주셨다. 처음으로 뭔가 얻은 이기분. 손에 소중한 아이템을 들고 동네 여기저기에 묻고 물어서 노인회장님을 만났고, 노인회관을 이용할 수 있냐는
말에 흔쾌히~ 키를 넘겨 주셨다. 저녁도 근처 집에서 얻은 찬밥에 라면 끓여 먹어서 해결하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도보 여행 하면 씻기
힘들어서 꾀죄죄하게 다닌다는데 첫날부터 일이 잘 풀렸었다. 다만.. 노인회장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야기를 조금 하고 가셨는데 좀 사상적이고
종교적인 내용이 많아서 마음에 걸렸다. 머 모든게 다 좋을 수 많은 없으니깐. 그래도 성질 안좋은 이장호가 한마디 붙일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잘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저녁도 배불리 먹고 씻기도 잘 했겠다 이제 자는 일만 남았는데 모기의 어마어마한 공습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웃긴
것은 자면서 모기 때문에 깰때마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잘 자는 장호와 한규를 보며 ‘아-부럽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침에 일어 났더니 한규와 장호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나는 모기 때문에 계속 깼는데 너네는 어떻게 그렇게 잘자냐’고 비난하고 있었다. 우리가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 모기땜에
계속 깨면서도 정신없이 잤단걸 서로가 확인해 주었으니.
story/시속5km - 우리가 걷는 속도